화성 안 팔달산 중턱에 성신사가 있다. 화성을 순례하는 이들은 성신사를 절로 알고 있다. 사는 절 이름에 붙이기 때문이다. 성신사에 ‘사’는 ‘절 사(寺)’가 아니고 ‘사당 사(祠)’다. 성신사(城神祠)이다. 성을 지키는 신을 모시는 집이다. 화성을 축성하면서 건설 과정과 제도, 의식 등 모든 사항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남긴 조선왕실의궤인 화성성역의궤에 성신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화성이 세계유산이 된 배경에는 화성을 쌓을 때의 정신과 축성의 전 과정이 담긴 의궤에 있다. 성신사도 마찬가지다. 1796년 병진년 봄 특별교지로 집터를 잡으라는 정조의 명령이 있어 택일하여 성신사를 지었다. 화성 축성 준공을 앞두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좋은 날을 가려 성신사를 세우라는 정조의 어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조는 “때를 맞춰 제사를 지냄으로써 나에게 오래도록 누릴 장수를 주고 복을 주며 화성이 만세토록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제문을 직접 짓고 향을 내렸다.
“고유제의 제품은 7가지, 폐백은 없고 축문은 있게 하라. 해마다 봄가을 첫 달 음력 1월과 7월 좋은 날에 수원유수가 직접 헌관이 되어 고유제를 지내라”는 왕명도 함께 내렸다. 이는 성신사가 그만큼 중요한 화성의 시설물이라는 뜻이다.
성신사는 팔달산 오른쪽 기슭의 병풍바위 앞에 동쪽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1796년 봄 7월11일 고유제를 올리고 터를 닦기 시작해 9월 19일 ‘화성성신지주’라는 위판을 봉안하고 고유제를 지냈다. 성신사 고유제는 수원화성이 만세토록 보존되고 백성의 태평성대를 기원했던 의식이었다. 100년 이상 지속됐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성신사가 훼철되면서 명맥이 끊어졌다. 일제가 민족정기와 왕기가 깃든 화성을 파괴하면서 성신사도 함께 없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신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 후 각종 문헌 자료와 지표조사를 통해 성신사 위치를 확인하여 2009년 10월8일 성신사가 다시 중건되어 해마다 고유제를 지내고 있다. 원형 가깝게 복원된 성신사와 함께 고유제가 수원의 문화유산으로 연년세세 이어가고 있다. 성신사에 깃든 정조의 사상을 엿봐야 한다.
글쓴이 : 김훈동
「수원화성의 숨결, 시와 그림으로 빚다 」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