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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상반기 역사탐방 후기] 홍미경 : 봄의 색으로 물든 여주역사탐방

작성자
정조인문예술재단
작성일
2025-04-30
조회수
93

봄의 색으로 물든 여주역사탐방 - 홍미경


최근 몇 일간 갑작스런 눈과 비바람으로 봄에서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당혹스런 날씨가 계속 되었다. 기온은 오락가락하고 하늘은 흐린 듯 맑은 듯 종잡을 수 없게 했지만, 모처럼 계획한 봄 답사 여행은 그런 날씨마저도 설렘으로 채워주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 끝에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답사 여행이기에 얇은 옷들을 겹겹이 입은 채 문을 나섰다. 그러나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나의 전신은 저절로 깊은 심호흡과 함께 이완되면서 켜켜이 입은 옷들이 살짝 거추장스러웠다. 상큼한 아침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면서 완연한 봄기운은 나의 등을 살포시 감싸 안았다. 낯설도록 반가운 봄날, 설레임을 가득 안고 2025년 여주 답사 여행을 시작했다.

 

시간 맞춰 도착한 곳은 경기도문화재단, 버스 안에는 답사꾼의 포스를 지닌 많은 분들이 일찌감치 오셔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다. 이번 답사를 소개해 주신 분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준비해 주신 김밥 간식과 책자를 받았다. 역사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답사팀에 끼는 것이 부끄러웠고 답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빠르게 주신 자료를 훑어 보았다. 스캔하듯 단숨에 글을 읽어가다 순간 나의 이목을 집중시킨 내용이 있었다.

 

수원 사람이거나 혹은 정조대왕에 조금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정조대왕이 17956천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수원으로 행차해 78일간 다양한 행사를 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정조는 즉위 3년이 되던 기해년(1779)에 효종 120주기를 맞아 창덕궁에서 남한산성을 거쳐 이천을 지나 여주의 영능을 참배하고 창덕궁으로 되돌아오는 78일 간의 특별한 행차가 있었다는 것을 자료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때문에 오늘 답사길은 246년 전 역사 속의 위대한 군주 정조가 지났던 길을 걸어보고 문화와 과학의 발전을 통해 최고의 조선을 만들었던 세종과 민족의 자존심과 자주를 위해 북벌을 꿈꾸었던 효종을 만나는 가슴 벅찬 하루가 될 것 같다.

 

답사 첫 목적지는 여주 시청 옆 여강가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사당인 대로사다. 이사님의 해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79년 정조는 여주에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과 효종의 능인 영릉(寧陵)을 다녀가면서 청심루에 올라 송시열을 회상하였고 여주 유생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효종의 신하로서 충절을 바친 송시열을 추모하기 위해 대로사를 건립했다. 대로(大老)는 송시열을 존대하는 극 존칭어로 대로사 홍살문 옆에는 대로사비가 있다. 정조가 직접 비명과 비문은 내리고 직접 글씨를 써서 내렸으며, 대로사는 고종연간 서원 철폐 때에도 존속하여 이름만 '강한사(江漢祠)'로 개칭했다고 한다.” 발도장 찍으며 배우는 역사 지식이 책상 위에서 얻은 지식보다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라며 다음 행선지인 효종릉을 찾았다.

 

조선왕릉은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답사하는 이들에게 역사적 지식을 제공함은 물론 평화로운 휴식과 마음의 여유를 준다. 또한 오늘처럼 온갖 꽃들이 수줍게 피어나는 초봄의 답사는 비할데 없는 싱그러움과 청량함을 선사한다.

 

효종은 한평생 북벌에 전념해 군비 확충에 몰두한 군주였으나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란 젊은 나이에 창덕궁에서 승하한다. 어린 나이에 이역만리에서 겪었던 고초가 끝내 독이 되어 원대한 이상을 품었던 젊은 왕의 수명을 재촉한 것은 아닐까? 효종릉의 특징은 조선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이 풍수를 고려하여 상하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능역 보호를 위해 봉분과 석물 등이 있는 능침공간을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세종대왕의 능으로 향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숙종, 영조, 정조 임금이 능행할 때 지금 우리들처럼 효종 영릉을 참배하고 숲길을 지나 세종 영릉에 참배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잠시 시공을 초월하여 역대 임금님들과 함께 이 길을 걷는 상상을 해본다. 선정을 베풀고 부강하고 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노력했던 임금들의 노고를 헤아려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세종대왕릉에 도착했다.

 

조선의 왕들 중에서 가장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분은 단연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세계의 문자로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반포일, 그리고 글자의 원리까지 알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한 업적만으로도 추앙받을 만한 위대한 왕이다. 이곳 영릉은 조선 4대 왕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으로 조선 왕조 역사상 최초의 합장릉이며 풍수적으로도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좀 더 가까이에서 세종대왕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지만 멀리 보이는 봉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내려왔다.

 

새벽부터 분주하게 답사길에 올라 여러 곳을 탐방하다 보니 금방 허기가 졌다. 여주에서 유명하다는 한정식집에서 정성스럽고 맛깔나게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여주박물관 까페에서 달달한 음료를 마시니 곧 활력이 되살아났다. 까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도 싶었지만 우리는 서둘러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신륵사라는 사찰을 찾았다.

 

나에게 신륵사란 사찰은 학창 시절 교과서 속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낯선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속이 아닌 강변에 위치한다는 기억뿐이었다. 답사의 묘미는 기억 저편에 있던 희미해져 가는 지식들을 현실로 끌어 들여 눈앞에 펼쳐주는 것이 아닐까? 신륵사는 과연 남한강을 굽어보며 천년 고찰의 향기를 가득 담은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사찰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에 발을 들여놓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안내판을 읽어보고 전각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준비해주신 책자에 따르면 신륵사에 8개의 보물이 있다고 했다. 보물을 하나하나 찾으면서 숨겨진 의미와 이야기를 발견하다 보니 딱딱한 교과서 속 활자들이 다시 정비되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 떠난 여주 답사 여행은 앞으로 떠날 또 다른 답사 여정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답사를 기획하고 준비해 주신 정조인문예술재단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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